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Cast. 아이조 카렌, 카구라 히카리
카군 @kakun88_revue
블랑셰
스탠리
#1
무대 위에서 카구라 히카리는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돌아왔어요. 장미 한 다발을 들고 돌아와 용서를 빌었어요. 내 용서를 빌었지만 용서받지 못할 일도 있는 법. 고의로 잔인하게 구는 건 용서받지 못할 짓이에요!
카구라의 앞에서, 아이죠 카렌은 눈을 부라리며 주절댄다. 머리엔 싸구려 티아라를 얹고, 때묻은 싸구려 드레스를 걸친 채. 평소였음 티끌 하나 없이 빛났을 그 눈은 공상으로 번질거린다. 여태까지 연습해 온 그대로.
내 의견을 말하자면, 그거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유일한-
대사를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면서도, 카구라는 속으로 부르짖는다. 전보. 전보 좋아하시네. 거짓말. 거짓말. 교양 있는 여자? 동반자? 마음의 아름다움? 뭐 영혼이, 남자의 삶이 무어 어째? 하나부터 열까지 다아 거짓말이야. 허풍선이. 저 가증스러운 거짓의 벽이라니! 카구라는 깊게 숨을 들이쉰다. 아직은 달려나갈 때가 아니다. 아직은. 아이죠는 연신 비틀대면서도 시선은 하늘에 올라 내려오지 않는다. 임시로 칠해 올린 벽의 페인트와 내무 냄새. 달아오른 조명의 쇠 냄새. 온갖 냄새들이 카구라의 코를 후려친다. 아. 이런 느낌, 참 간만이다. 눈 앞에서 아이죠는 불붙은 양 지껄이다가 지쳤는지 울음소리를 낸다. 카구라는 다음을 준비한다.
그게 그 텍사스 석유 부자가 보냈단 전보 전 일입니까, 아님 그 다음입니까?
성냥을 긋는다. 불이 타오른다. 그걸 그대로 도화선에 댄다. 셋. 둘-
뭔 전보요? 아, 아뇨, 아뇨, 나중에! 전보가 언제 왔냐며는-
하나.
사실 전보 따윈 오지도 않았어!
벼락같이 터뜨린다. 카구라의 눈 앞에서, 무대 위의 모두가 움찔한다. 관객들도 비슷하겠지. 아이죠는 비틀대면서 오, 오! 하고 단말마밖에 내뱉지 못한다. 공포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카구라는 다시 앞으로 달려나간다.
다 그 망할 상상뿐이야! 거짓말, 자만심, 그리고 속임수뿐이잖아!
아이죠는 비칠대며 바닥에 쓰러지려 든다. 아이죠의 눈에 당황이 쏘듯 지나간다. 아 이런, 카렌, 안돼, 거기 아니잖아! 카구라는 아이죠의 팔을 붙잡고 내던지듯, 원래 쓰러졌어야 할 침대로 밀어붙인다. 침대에 쓰러지면서, 아이죠는 카구라에게 보이지 않게 살짝 웃는다. 어휴, 바보 카렌. 카구라는 속으로 혀를 찬다. 목이 탄다. 최대한 티나지 않게 목을 다듬어본다.
네 꼬락서니 좀 봐!
하지만 카구라는 계속 몰아붙인다.
넝마주이한테 50 센트 주고 빌린 낡아빠진 마디 그라 드레스나 걸치고 있잖아! 그리고 그 망할 왕관이랑! 자기가 무슨 여왕인 줄 알아?
아이죠의 옷자락을 확 잡아 당기자, 미리 칼집을 낸대로 옷이 확 튿어진다. 아이죠의 얼굴을 쳐다본다. 아 이런. 바짝 얼어 있다. 보이지 않게 살짝 뻐끔대며 속삭인다. 카렌. 다음 대사. 다음 대사.
오 신이시여.
일단 한 고비는 넘겼다. 카구라는 다시 거칠게 몰아 붙인다.
처음부터 난 알았어. 난 한 번도 당신한테 안 속았다고! 온 집구석에 파우더랑 향수를 뿌려놓고 전구에 종이 등이라도 씌워놓음, 여기가 이집트가 되고 당신은 나일의 여왕이라도 되는 줄 알아? 왕좌에 앉아서 내 술이나 홀짝거리고 말이야. 하-하! 잘 들어. 하-하!
요란하게 어깨를 들썩대면서, 카구라는 천천히 일어서서 무대 반대쪽으로 간다. 병풍으로 살짝 가려진 뒤에서 실크 파자마를 다시 걸친다. 그 사이에 아이죠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전화기에 대고 장거리 통화를 외친다. 떨리는 손으로 단추를 하나 하나 채운다. 아. 목이 탄다. 분명 아까 전에 맥주인 척 탄산수를 땄을 때 마셨는데. 이 기갈! 다행히도 카구라 히카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기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카구라는 다시 앞으로 나선다.
전화를 제대로 안 끊었잖아.
전화기를 바로 놓는 척, 카구라는 “문”을 몸으로 막는다. 아이죠의 얼굴이 헬쑥해진다. 쥐어 짜내는 목소리로 아이죠는 애원한다.
지나가게 해줘요!
오, 지나가요. 안 말려!
살짝 옆으로 비껴준다. 문이 보일 정도만. 하지만 아이죠는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되려 뒤로 물러날 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가줘야지. 아이죠가 물러날 때마다 카구라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다가오지 마요! 조금만 더 다가오면-
뭐?
나쁜 일이 생길 거니까요!
그 사이에 둘은 이미 침실까지 들어온다.
난 분명 경고했어요!
그러더니 병을 잡고 테이블에 내리친다. 병이 깨지지 않는다. 아뿔싸! 아이죠는 있는 힘껏 다시 내리친다. 두 번, 세 번- 그제야 설탕으로 만든 병이 깨진다. 오늘 무대는 어째 고난의 연속이다. 무대 뒤의 마사이와 소품 담당은 아마 죽을 맛이겠지. 여하간 병이 깨졌으니 이제 거의 끝이다. 아이죠는 병을 집어들고 카구라 쪽을 향해 쭉 뻗는다.
다가오지 마요! 다가오면!
뭘 어쩌게?
당신 얼굴을 그어버릴 거야!
오, 그래. 그래야지. 카구라는 무심결에 입술을 핥는다. 이젠 목을 축여볼 시간이다.
오호라, 거친 걸 좀 좋아하시는 모양이지? 좋아. 거칠게 가 보자고!
그대로 아이죠를 향해 달려든다. 아이죠가 병을 어설프게 휘두르려 하지만 그대로 놓쳐버린다. 원래는 쳐내야 하지만, 뭐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그대로 아이죠를 끌어안고, 번쩍 들어 올려 한 바퀴 돈다. 아이죠가 팔을 버둥대지만 힘이 없다.
호랑아, 호랑아- 그놈의 병 좀 내려놔, 병! 왜 이래,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 다 알았잖아!
그러다가 서랍장에 아이죠의 허리가 거칠게 쳐박힌다. 아이죠는 비명을 지르려다 가까스로 참아낸다. 피가 식는 느낌에 멈칫하려니, 스피커에서 요란하게 거울 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곤 곧장 암전이 된다. 어둑한 무대 위에서 자리를 옮기며, 아이죠는 입모양으로 뻐끔댄다.
괜찮아.
카구라는 그제야 한숨을 내쉰다. 다시 파자마를 벗어 무대 뒤로 던지려니, 아이죠가 다시 속삭였다.
히카리쨩이랑은 거칠어두-
이 바보 카렌이 진짜!
